쎄노폰의 소크라테스를 그리워하며
소크라테스는 <<나도 정치할 수 있다!>> 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그 예리한 질문을 통하여 다시 한번 더 확실하게 스스로 자신의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확인하도록 함과 동시에 정의에 대해서 가르치면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안에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을 통하여 대화하는 예술로 승화시킨 지혜 지식학자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하는 예술은 말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 않고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예술적인 대화법은 유가 사상의 홍익인간을 위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배우기를 원하는 많은 문명인들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고 있다.
세노폰은 사람으로서의 도리적인 본보기를 몸소 실천한 자신의 선생, 사랑스러운 지혜 지식학자 소크라테스를 그리워하며 그 당시의 안타까운 정치적인 사건을 지금의 우리들에게 아주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그 자신은 무엇이 믿음이 강한 것이며, 무엇이 믿음이 없는 것이며, 어떤 행동이 아름다운 행위이며, 어떤 행동이 비난받을 행위인지에 대해서, 영혼의 건강은 어디에 있으며, 영혼의 병은 어디에 있으며, 하나의 국가 그리고 한 명의 정치가, 하나의 정부, 하나의 정부의 책임가는 어떻게 행해야만 하는지(…)
그러나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노예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왜냐하면 대부분의 어떤 것들은 신들이 알고 있으며 또, 대부분의 어떤 것들은 신들이 모르고 있다고 그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 신들이 인간들에 대해서 관리를 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어. 소크라테스는 그 신들이 이 세상 어디에서나 존재하고 있으며 그 모든 인간적인 일들에 대해서 사람에게 계시적인 것으로 나타내어 보여준다는 믿음과 함께, 사람이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그리고 비밀스럽게 행하여지도록 하는 것도 또한, 그 신들이 그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어.
나는 또한, 이러한 판단에 동의를 해. 왜냐하면 한번 외웠던 시를 계속해서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 잊어버리게 되지. 그것과 마찬가지로 등신들에게는 선생으로부터 배웠던 지켜야할 글귀들을 다시 잊어버리게 된다고 나는 생각해. 그러나 한 사람에게서 도덕적인 글귀들이 한번 잊혀지게 되면 그에게는 또한, 영혼에서 지혜학에 대한 사랑을 싹트게 하는 것도 또한, 사라지게 될거야.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라는 영혼의 활동들이 사라졌다면 그 지혜 자체가 또한, 사라지게 되는 것은 기적이 아니지.
한 사람이 그 전에는 절제된 생활을 하였건만 나중에는 무절제성으로 빠지는 것을, 그리고 다른 사람은 처음에는 정의를 실행하는 것을 이해를 하였건만 그 다음에는 그 배웠던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어? 그 모든 고귀한 것 그리고 선한 것을 위해서 그리고 특별히 그 절제성을 위해서 연습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나는 최소한 믿고 있어. 왜냐하면 그 즐기고자 하는 것들은 영혼과 함께 그리고 그 같은 육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 즐기고자 하는 것들은 절제하고자하는 것들에 융화되지 못하도록 강조하면서 가능하면 재빠르게 영혼과 육체에 대하여 명령하는 주체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야.
그 30명의 독재자들이 그 가장 악한 사람들은 처형하지 않고 다른 많은 시민들을 처형하도록 하였을 때, 그리고 많은 법률을 지키지 않도록 잘못 이끌어나갈 때, 소크라테스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마치 누군가가 소떼를 지키는 사람으로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서 소들의 숫자를 줄여나가고 더 악한 상태로 만들면서 하나의 악한 소지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어디에선가 말했지. 국가의 지도자로 지정된 사람이 국가의 시민들의 숫자를 축소시키고 더 악한 상태로 만들고도 부끄러움이 없이 그 자리에 머무르며 악한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또한, 말했지.
그들이 이러한 것들을 처리한 후에, 크리티아스 그리고 샤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를 그들 앞에 불러놓고는, 소크라테스에게 법률을 보여주며 말하는 예술 즉,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금지시켰어.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 법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설명을 해 줄 수 있느냐고 그들에게 또, 질문을 하였지.
육체에 대해서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돌볼뿐만 아니라, 돌보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 식사를 그 적당량 이상으로 섭취하는 것 그리고 적당량 이상으로 작업을 하는 것도 소크라테스는 권장하려고 하지 않았어. 그러나 음식을 섭취하는데 있어서 즐거이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음식량을 즐겨서 섭취하도록 하였으며 그 동료들과 어울릴 정도의 작업을 하도록 소크라테스는 권유하였어. 왜냐하면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한면으로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며 다른 한면으로는, 이러한 삶의 방식이 영혼을 돌보는 길에서 방해를 받지 않는다고 말하였기 때문이야.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돈을 받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자유가 보장이 된다고 믿고 있었어. 그러나 그는 돈을 받고 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그 비용을 지불하는 제자와 대화하는 것에 강요당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몸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노비 장사군이라고 불렀어. 스승으로서 그 도리를 가르친다는 사람이 그 댓가로 돈을 받으면서, 그 가장 큰 보람은 한 명의 순수한 친구를 얻게 되는 것에 놓여있다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그를 통해서 온순하고 고귀하게 된 그 어떤 제자가 그러한 가르침을 준 그에게 아주 큰 고마움의 표현을 할 줄 모른다는 점에 대하여 더 큰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더욱 더 의아해 하였지.
그와는 반대로, 그들의 이성을 키우게 하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그러한 견해를 나는 가지고 있어. 그들이 함께 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연관이 있는 것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가르친다면 가장 최소한의 폭력이 있게 될 것이며 그들은 그 폭력이 적대심 그리고 위험들이 그 발 아래에 따라다니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폭력으로 강요된, 마치 도단당한 사람처럼 증오심을 가득 품게 될거야. 그 폭력 규정을 사용하는 사람은 지성을 사용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지성을 소유함이 없이 육체의 강인함으로만 사용하는 사람이야.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설득할 수 있는 생각들을 통한다면 위험이 없고 평화적인 길들로 도달하게 될 것이야. 그 설득된 사람들은 마치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지.
그러한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그 법관이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하나의 잘못된 판결을 내리는 것은 그리 분노할 일이 아니지만, 그의 견해에 대해서 이미 이 세상이 다 알고 있었던 일에 대해서 그들이 마치 모르고 있었던 일처럼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는 점은 아주 분노할만한 일이야.
(…)그러나 그 두 명의 크리티아스와 알키비아데스라는 고소인들은 (…) 왜냐하면 크리티아스는 귀족 당원들 중에서 가장 물질적 욕심이 많은 사람이며 가장 폭력적인 사람이고 다른 한편으로, 알키비아데스는 그 민주 당원들 중에서 가장 한계를 모르는 사람이며 가장 뻔뻔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무엇보다도 이 두 남자들은 그 아테나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자신의 성공에만 가장 집착하는 사람으로 천성적으로 타고난 사람들이었지. 그들은 그 모든 권력을 그들의 손아귀에 넣고서 그들의 이름이 그 모든 분야에서 널리 유명하게 되어져야만 하였어.
그 고소인 두 사람은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삶을 눈으로 보았고 그들은 이미 설명한데로 그러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 둘은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인내심을 따르기 위해서 소크라테스와 가깝게 지내려고 했다기 보다는 그들이 소크라테스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통하여, 말할 때 그리고 행동할 때에 있어서 소크라테스와의 가장 큰 유대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바램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훨신 더 큰 이유라고 아마도 그 어떤 사람이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동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 사람에게서 양육되어질 수 없다는 주장을 나는 하려고 해. 크리티아스와 알키비아데스는 그러나 소크라테스와의 관계를 맺고 교류를 하는 동안에 그들은 진심으로 소크라테스에게 동의를 한 것은 아니었으며 처음부터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동기로 행했던 것이야. 왜냐하면 그 당시에도, 아직 소크라테스의 친구로 지내고 있었을 때에도 그들은 그 국가 사업들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과 가장 즐겨서 상담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지.
크리티아스와 알키비아데스는 그 당시의 정치가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을 때, 그렇게 소크라테스와의 제자 관계를 멈추었지. 왜냐하면 앞면으로는 그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전혀 동의하지 않았으며 뒷면으로는 그들에게는 언제나 화가 날 일만 생겼기 때문이야. 그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왔을 때 마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르게 고치도록 허락해야만 했기 때문이었지. 그들은 국가 사업을 하기 위한, 그 동기가 바로, 소크라테스를 찾아오게 된 이유였어.
그런데 그 고소인들은 더 나아가, 소크라테스가 그의 친구들에게 소크라테스를 통해서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된다는 믿음을 가르쳤다고 주장하였으며 아버지들에게 흉악한 짓을 하여도 된다고 가르쳤다고 주장하였지. 그리고 그 외에도 법률에 의해서 아버지가 영혼의 병을 앓고 있다고 판명이 났다면, 아들이 직접 그 아버지를 끈으로 묶어 놓아도 된다고 말을 했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는 단지, 만일 적게 배운 사람이 많이 배운 사람에 의해서 끈으로 묶어 놓는다 하여도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는 그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였지.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지식이 없는 사람이 하는 짓과 영혼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하는 짓의 차이점에 대해서 자주 관찰을 하였어.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병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영혼의 병이든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을 묶어놓는 것에 대해 도움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그 풍습을 발견하였지. 그런데 옳게도, 단지 지식이 없는 사람은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가르치도록 허락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어.
무엇보다도 사람이 영혼을 떠나, 돌아갔을 때, 그 영혼에게만 그 지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 육체 자체는 그 가까운 가족이 가장 빠르게 집 밖으로 이동 시키고 다시는 눈으로 볼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을 소크라테스가 그 아버지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나머지 친척들에 대해서 또한, 친구들에 대해서 표현했던 것 그리고 기억하도록 했던 것을 나는 알고 있어.
이러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러나 사람이 아버지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땅에 묻어야 한다거나 스스로 몸을 잘라내어야 한다고 가르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전혀 아니고, 지성이 없는 사람은 존경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어.
더 나아가 그 고소인들은 소크라테스가 그 가장 유명한 작가의 그 가장 썩어빠질 구절을 골라내어서 그 구절에 근거하여, 그의 친구들에게 위험하고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다고 주장하였지. << 행동하는 것은 명예를 잃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전혀 행동하지 않는 것이 바로, 명예를 잃을 수 있다! >> 라는 해지오도스의 귀절은 소크라테스가 그 작가의 전혀 행동하지 않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 그리고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전망이 있다면 그러한 행동을 하여도 무방하다고 마치, 그 작가가 의미하는 것처럼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해석하였다고 주장하였어.
도가 사상 그리고 유가 사상
황제 한무제가 정비한 사상이 오늘 날의 도가 사상이다.
로마 카톨릭 또한, 로마 황제가 제정한 국가 종교이다.
그리고 유가 사상이 있다.
오, 페리클레스! 그럼, 폭력 그리고 법을 어기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번 말을 해봐. 만일 그 강한 자가 그 약한 자에게 설득을 통해서가 아니라 폭력을 통해서 그에게 유리한 것을 행하도록 한다면 폭력을 행사하는 것 그리고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니? 그것은 나에게는 최소한 법을 어기는 것으로 보이는데! 하고 페리클레스는 말했다. 그럼 만일 한 명의 폭군이 그 어떤 것을 지정하여 그 시민들에게 설득을 시키지 않고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시행하도록 만든다면 그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야? 나의 견해에 따르면, 법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폭군이 그 시민들에게 설득을 하지 않고 내세운 규정도 하나의 법률이라고 내가 조금 전에 했던 그 말을 나는 취소하겠어.
나의 견해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게 할 것이 아니라, 널리 국가로부터 하나의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주목되어져야만 하지. 그리고 또한, 법률을 존중했다면 이러한 판결을 내려야만 했었지. 왜냐하면, 그 법률에 의하면 그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벌은 도둑질, 옷의 도적질, 돈주머니 칼로 자르기, 폭력적인 침입, 영혼을 팔아먹는 일 또는, 성전의 물건들을 훔쳐서 고소당한 사람들로 , 오로지 범죄로 인해 고소당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었으며 이 세상에서 그러한 사람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은 소크라테스 외에는 없었지.
어떻게 그가 그 고소된 그대로의 내용이 적용되기를 원할 수 있단 말이지, 그는 그러한 고소장에 적혀있는 그 국가에서 인정하는 신들을 부정한다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그 모든 사람들 중에서 그는 가장 열성적으로 신들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증명이 되었지. 그 고소인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죄목으로 지명한 것처럼 그 젊은이들을 썪어빠질 길로 인도하였다는 것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그와는 반대로 훨신 더 알려진 것은 그의 제자들 중에 나쁜 욕망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을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해 주었으며 그 대신에 공공적인 그리고 가정적인 복지에 해당하는 가장 아름다운 그리고 가장 고귀한 도리, 부모적인 사랑 그리고 필요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야. 그러나 그가 그러한 일을 했다면 그는 국가로부터 가장 높은 상장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 옳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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