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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십자가는 사람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도구이며 문화적으로 구원하는 도구는 아니다. 문화적으로 구원하는 도구는 글이다. 이씨 조선 안중근열사는 이미 뮈텔 주교와의 대화에서 확인하였다.

2018.10.31

로마 제국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할 의도가 아니었다면

왜, 체포했을까?

그리고 왜, 유대인들에게 누구를 풀어줄까 ? 하고 유대인들에게 물었으며 왜, 유대인들이 그 예수를 죽이라고 한 사람들로 성경에 오늘 날까지 기록되어있을까?

로마 제국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관계는 도대체 어떠한 원수적인 관계에 놓여있기에 이렇게도 잔인하게 오늘 날까지도 그 관계는 계속되고 있는가? 그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다루어야하므로 다음 기회에 논하여 보기로 하겠다.

유대인들은 그 창조주의 개념을 먼저 특허한 사람들이다. 그 개념은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그러니까 로마 카톨릭에서 말하는 천·지·일월성신과 자연을 의식하고 기도하는 현상을원시적인 종교라고 부르고, 도교에서도 민속종교라도 부르고 있지만  하늘, 태양, 달, 별, 산신들에게 기도하는 행위는 바로 천지 창조주를 의식하는 행위로 그러한 의식의 과정이 없었다면 창조주에 대한 개념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창조주로부터 이성을 선물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모세 십계명은 그 창조주에 대한 설명을 아주 상세하고 명확하게 해 주고 있다. 

그러나 원시적인 종교는 사실, 사람이 사람을 대상으로 죽은 사람을 신으로 모시는 것이야말로 원시적인 종교이다. 그 개념들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혼란만 야기하게 된다.

조상숭배라는 개념도가 잘못된 것이다. 조상을 기리는 것이다. 조상을 기억하고 조상이 후손들에게 알려주었던 그 고귀한 말들과 행위들을 후손들에게 계속 알려주고 잊지 않겠다는 하나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바로 조상을 기리는 것이다. 조상 제사라는 말은 조상과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잘못 붙인 이름이다. 그 사람들은 조상의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며 장례식으로 화장을 한다. 

로마 카톨릭과 이씨 조선 시대의 조상 제사에 대한 논란은 바로, 그 두 가지가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예수도 사람이고 조상도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람을 제사 지내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가족, 친척들이 모여서 조상을 기리는 것이다. <<그 창조주는 우리 조상들이 믿었던 신>> 이라고 말하며 그 조상과 신을 동시에 기억하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 조선의 조상을 기리는 유가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조상이 예수를 기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를 인류의 조상으로, 창조주의 위치로 올려 놓겠다는 발상은 말이 되지 않는다. 유일신 창조주는 그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되지만 예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되지 못한다.  유일신 예수라고 거짓말로 사기를 치는 것 외에는 안된다. 

인류의 조상은 아담과 예뻐(이브)이며 창조주는 이미 예수 이전에 존재하고 있어서 지금은 유대인의 해로 5779년에 육박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새해는 시기가 풍부하게 추수를 하는 추석과 일치하고 있다. 이 추석은 가을 저녁에 이루어지며 유대인들의 축제도 저녁에 시작된다. 

태어난 적도, 돌아간 적도 없는 창조주는 우리들에게 언제나 그 자연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하늘, 해, 별, 달, 산들은 바로, 조상들과 함께하였던 존재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사실,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혜로운 사람의 행위를 원시적이라고 말하는 종교는 사람의 성질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아예 제외시켜버리는 도가 사상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제외시켜버리면 무법천지적인 잔인함만 남게 되므로 선과 악 그리고 이상은 없어지고 법률, 죄와 벌도 없어지고 동물적인 약육강식의 사회로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조상 숭배라는 말을 사용하는 로마 카톨릭 사람들은 유가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이씨 조선의 유가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가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가족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도록 하는 하나의 사회적인 약속이다라는 것을 왜곡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 가족들의 친목을 다지는 기회가 되는 시간 그리고 가족의 전통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회의 시간을 가져할 사람들이 예수를 위해서 교회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회를 잃게 된다.

한국 전쟁 그리고 정치적인 제도로 인하여 땅을 잃어버린 그 내적으로 능력있는 가족의 장은 로마 카톨릭의 신부, 대형교회 목사에 비하면 외적으로 우습게 보여지게 된다.  그 가족장도 성당에서, 그 대형 교회에서 머리를 굽신거리게 만든다.  또, 새로 가족을 이루어서 가족의 장이 되어야 이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미래가 있지만 희망이 없는 소인으로 전락하게 되도록 만들어 그 모든 것을 교회를 통하여 이루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창조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이성을 스스로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비난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고 있는 사회에서 살도록 만든다. 

이씨 조선의 안중근 열사가 경험한 것 처럼, 지혜학 자유는 금지하지만 종교 자유를 표방하는 종교 국가는 종교 최고 지도자가 그 모든 정치적인 결정을 간접적으로 내리기 때문에 종교 자유는 있지만 사람 자유는 없다.  그 신생 종교 국가는 문화가 없으며 전쟁을 위한 속국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중들이 대 활약을 하였던 고려시대가 생각이 난다.

예수가 유일신이라면 부처도 유일신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학교에서 교육을 시킨 이유가 바로, 이러한 그 모든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종교 국가의 종교 학교라는 사실이다. 언제나 약탈, 살인하는 고대 몽고 기마민족의 사고 방식으로 사람의 이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은 발전이 없다.

이씨 조선, 의식주를 스스로 자급하던 아침이 신선한 나라에서, 닭이 울면 새벽 기도를 가야지만 의식주가 보장이 되는 한국은 닭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고대 몽고 기마 민족 흉노의 왕 아틸라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이루어놓은 업적을 보고서 << 나도 할 수 있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 아틸라는 할 수 없다! >>라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그런데 그 증명이 된 것 조차도 인정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사실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 모든 비이성적, 비인간적, 비사회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기 위해서 아직도 하늘과 땅을 움직이려고 하고 있다.

그러한  권모술수의 함정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유가 사상을 배워서 알고 있는 보편적인 가정의 가장이 필요하다. 그 가장만이 그 어린이들을 보호할 수 있고, 그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법률이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 벌이 무엇인지를 가정에서 가르칠 수 있다.

사람의 이성이 분명하게 활용되기 위한 교육 개혁은 반드시 이루어 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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