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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에밀 듀억하임의 소르본대학교 도덕 양육과목 취임강의 내용 중에서 발췌. 신순임 번역  

신순임 번역

1902년 에밀 듀억하임의 소르본대학교 도덕 양육과목 취임강의 내용 중에서 발췌  

나는 사회지식학가로서 진짜 자연스러움으로 나타나게 하는 방법으로 양육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양육은 사회적인 일이고 그 사회의 뿌리 그리고 그 사회의 작용에 의해서 그리고 그것으로 교육학은 무엇보다도 사회지식학 과목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가르침으로 이끌어나가는 나의 기본생각이다. 그것을 소개를 하고 강조하는 것은 여러분이 실행하는데 이해하기가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을 첫시간에 모두 완벽하게 다루지는 못한다하더라도 우리가 단계적으로 그 사실에 대해서 점검하고 어떻게 사용되어지는지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다. 여러분에게 하나의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 그 말의 의미는 내가 가장 중요한 이유를 보여주겠다. 그 우선적으로 선택된 생각을 처음에 진찰을 한다고 말하겠다. 필요한 확인들에 대해서 알아본다는 전제하에서 어느 정도 가능한지 그리고 동시에 그 한계를 여러분에게 보여주는 것이 그 첫번째 강의의 목표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기초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집중해서 들어보면 좋겠다. 양육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일이라고 하는 그 견해는 현재까지도 그 모든 교육학자들은 거의 동일하게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그 교육학은 곧바로 단지 심리학 즉, 영혼지식학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그 역사적인 그리고 그 사회적인 조건들에 상관없이 그 양육은 누구 나 그 차이가 없이 모든 사람에게 알맞는 단지, 하나의 유일한 양육이 있다라는 이론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사람은 말한다. 사람은 단지, 천천히 하나의 서서히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성숙해지는 교양이 완성되어가는 것은 명백하다. 그것으로 그 사회적인 환경에 놓여있는 그 상태는 교육학이 관심을 가져야하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시간과 장소의 조건에 대해서는 놓치게 된다. 그 어떤 의미로서의 그리고 어떻게 그 개발을 유도할지에 대해서 결정하고자 한다면, 사람은 스스로 그 내면적으로 그 개발을 위한 씨앗을 품고 있으므로 단지, 유일하게 그 아이를 관찰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그 어떤 능력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 어떤 방법이 그 아이의 자연스러움인지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이다. 개인의 성향을 묘사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심리학 즉, 영혼지식학이다. 교육학의 필요성에는 영혼지식학은 충분하지 않다. 그 어떤 사회에서도 다양한 교육학적인 조직들이 존재하고 동시에 작용하고 있지 않는 사회는 없다. 사회가 카스트제도로 운영된다면 그 양육은 카스트 계층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각각의 직업은 그 특별한 능력들 그리고 특수한 지식을 요구하고 특정한 생각들, 특정한 관습 그리고 특정한 견해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상을 나타내어 보여주고 있다. 그 아이가 언젠가 해내어야하는 그 과제에 대해서 그 아이는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 양육은 그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 모든 사람이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그 양육은 더 이상 같은 형태가 아니다. 그 모든 문명화된 나라들에서 더 많이 세분화되고 전문화가 되는지를 그리고 이러한 전문화는 더 이른 나이에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관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지성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타고난 성향으로 하나의 일정한 직업적 작용을 나타내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평균적으로 사람은 아주 다양한 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사람이 이것이 아닌 다른 직업을 위해서 전문화한다면 그 사람의 내적인 필요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의 태어난 자연스러움이 강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러나 그 사회 일원들 사이에 그 다양한 직업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그 사회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양육은 스스로 필요로하는 전문적인 직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고난 자연스러움은 모두 개발시키는 것이 아니다. 사회를 통하여 사회를 위하여 그 양육은 그렇게도 다양하다. 사람이 개인성을 가지게 되었다면 행동하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이 적게 적당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무엇보다 생동감있는 존재 그리고 다른 것 보다도, 사람은 그의 활동적인 능력을 아마도 더 급하게 필요로 하는데 그 삶은 바로, 행동이다. 지금의 상태에서 그럼에도 그 사회에서 지성적인 삶이 어느 정도의 발전을 이루었고, 사람들 중에는 그 생각을 위해서만 집중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한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그 생각은 그러나 만일, 그 사람 자신이 완전히 그 움직임에서 중단하고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돌아온다면 단지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모든 에너지를 활동하는데서 심사숙고하는데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존재한다하더라도 그 대체할 수 없는 지식학적인 진화의 주체가 된다. 인간이 그의 핵심점을  가까이서 직시하고 변화하기 위해서 또, 하나의 양육이 필요하다고, 이러한 유용한 변화를 준비하기 위해서 인간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간적인 형성에 대해서 구체적이지 않은 추상적인 분석을 통하여서는  미리 알게 되는 것은 전혀 허락하지 않았을텐데.

그 민족이 그 어떤 생각들, 느낌들 그리고 실행들로  존재하지 않는 민족은 없다. 그 양육이 차이점이 없이 그 모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만 하는 그 어떤 사회적인  부류에 속하던지 상관없이 행하는 이러한 공통적인 양육은 일반적으로 그 유일한 진짜 양육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공통적인 양육에 대해서 어떻게 주장하고 완전한 인간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지에 대해서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그 공통적인 양육은 사회조직과 연결되어있고  그 사회조직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게 역사적으로 알 수 있다. 로마에서 공통적인 양육이 있었고 그 양육은 로마적인 것이다. 각각의 민족은 그 민족 자신에게 알맞게 제공할 수 있는 양육이 있다. 그 민족의 도덕적인, 정치적인, 종교적인 조직에 따라서 개념지어진다. 그 공통양육은 하나의 민족적 특성의 하나의 요소이다.  왜, 개인이 여기에서 그 국가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지, 그리고 그 개인이 그곳에서 완전히 반대로 그 개인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하나의 자율적인 존재로 그 개인에게서 만드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지, 그것이 그 이유이다. 그 사람들의 필요성이 변하였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변하였고 그 사회적인 조건들이 변하였기 때문에 그 사회적인 조건들에 의해서 사람들의 필요성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필요성은 더 이상 같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 100년 동안 그 양육은 언제나 직접 감시하고 국가가 유도하도록 노력하고 있는 공적인 제공으로 되고자하는 현상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양육의 목표는 지역과 인종에서 벗어나 일반적이고 추상적이 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 양육은 여전히 단체적이다. 그 단체적인 것이 바로, 우리를 강요하고 있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그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아이의 자연스러움을 개발시킬 것을 명령하지 않는가? 단체적인 것이 우리에게 공적인 여론을 통하여 하나의 도덕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것으로 우리들의 양육적인 의무들에 하나가 되고 그 의무는 또한, 그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고 하나의 단체적인 것으로  스스로 그 과제를 이행한다. 단체가 이러한 점에 그 과제를 집중한다면, 그것은 그것에 대해 흥미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하나의 계속되는 인간적인 교양이 그 현대사회에게, 그들에게 필요로 하는 그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인 동의에 필요한 공통점을 하나의 유일한 관점에서 그들이 모두 똑 같다라는 비슷한 점이 많을 수록 다시 말하면, 그들이 모두 인간적인 존재라는 단지, 그 조건에서 지켜질 수 있다. 그렇게 우리의 교욱학적인 이상은 우리들의 사회적인 조직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만일 우리의 현대적인 양육이 더 이상 좁은 의미의 국가적이 아니라면, 현대적인 국가의 우리 헌법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 바로, 그 사회가 그러한 인간 유형을 본보기로 높이 세웠고 언제나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새로운 유형을 그 새로운 유형의 필요성에 따라서 꾸며내는 것을 생각을 통해서 가장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룩해내는데 그 양육가가 노력해야만 한다. 사람이 그 양육을 우리 내면에 실현해야만 하는 것은 자연이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그 사람을 사회가 가지기를 원하는 그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회는 사람의 내적인 경제가 필요로하는  사람을 가지고자 한다. 그 증거는 어떻게 우리의 사람의 개념이 사회들마다 변화했는지에 있다. 그들이 그들의 같은 그림을 낮선 민족에게서 보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들의 눈에는 그 그리스 국가의 양육이 유일한 것이고, 단지 인간적인 존재를 올바르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의 개념이 아닌 그들의 방식으로 인간을 개념지었다. 사회적인 분업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 분업이 억압적으로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그 각각의 전문직업가의 전문화가 분명해지고 더 일찍 일어난다면, 공통의 양육은 필수적으로 포함되고 그 행동방경은 좁혀진다. 그것으로 인간유향의 성향은 더 빈곤하게 나타나게 된다. 예전에는 문학적인 교양이 하나의 기본적인 요소로 하나의 누구나에게 인간적인 문화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단지 하나의 전문가로 나아가는 시간에 있으며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오늘 날은 생각과 숙고, 내일은 아마도 사물과 예술에 대한 감각의 그 취향이 더욱 더 섬세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학적인 이상은 지금은 과거와 같이 그 하나 하나는  그 사회의 작품이다.  그 사회는 우리를 사람의 초상화로 그려내는데, 그것은 우리들 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초상화에는 그 모든 특별성이 그 사회의 조직으로 거울에 비추어진다. 오로지 그 구성원들이 충분한 협동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회는 살아남을 수 있다. 기본적인 유사성을 고정시키고 사회적인 삶을 전제로 한다면, 그 양육은 이러한 협동성을 위하여 처음부터 그 아이의 영혼에 존재하도록 그리고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의 어느 정도의 다양성이 없다면, 다른 한편으로 협동적인 작업은 가능하지 않다. 그 양육은 그 사회에서 다양하도록 해주고 전문화하도록 하는 이러한 필요한 다양성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보증을 해준다. 그 사회는 이런 저런 관점에서 하나의 젊은 세대의 방법적인 사회화가 이루어진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 두개의 존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단지 추상적으로만 나눌 수 있지만, 분명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 하나는 우리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그 모든 정신적인 상태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일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개인적인 존재라고 이름지을 수 있겠다. 그 다른 하나는 그 생각들, 그 느낌들, 그 우리들 개인적이지 않는 그 단체 또는, 우리가 소속되어있는 그 다양한 단체들이 표현하는 조직, 그것들은 종교적인 신념들, 그 도덕적인 견해들 그리고 습관들, 국가적인 그리고 전문적인 전통들, 그 단체적인 견해들과 같은 그 모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사회적인 존재를 형성한다. 이러한 사회적인 존재를 우리 내면에 형성하는 것이 그 양육의 과제이다. 그것이 바로, 양육의 역할의 의미이고 열매를 맺도록하는 효과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회적인 존재는 미개한 사람의 구성에서는 완성체로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즉흥적인 결과도 또한, 아니다. 그 사회는 그 새로운 세대와 새롭게 시작점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그 사회는 지금 태어난 이기적이고 사회적이지 못한 아이를 신속하게 다른 존재로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 아이가 사회적인 그리고 도덕적인 삶을 이끌어가는데 문제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른 존재를 더해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그 양육의 과제이다. 여러분은 그 전체적인 가능성을 저울질해볼 수 있다. 그 양육은 그 개인적인 육체적, 정신적인 기관들을 자연그대로 나타내보이는 그 방향대로 개발하고 단지, 깨어나게 되기를 바라는 숨겨진 가능성을 나타내보이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양육은 사람에게서 하나의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은 우리의 내면적으로 좋은 삶을 가치있고 존엄을 가지는  그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러한 인간적인 양육의 창조적인 힘은 특별한 혜택이다. 인간에게는 다양한 능력이 있으며 그 사회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는 아주 많이 복잡한 경우이다. 그래서 하나의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물려줄 수는 없다.  그 물려줄 수 있는 것은 그 양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 양육은 무엇보다도 외적인 필요성으로 대답할 수 있다. 즉, 사회적인 필요성에서 보여준다. 그 다양한 사회들에서 그 각각의 사회에 따라서 이러한 성질의 양육을 아주 무시하고 실행하지 않거나, 아주 다양한 그 사회들에 따라서 아주 다양하게 이해되어지고 있다. 그러한 하나의 무너질 수 없는 지성적인 문화는 어쨋든 그 모든 민족들로부터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늘 날, 아주 높게 평가하는 그 비판정신은 오랫동안  악이라고 말하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양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민족이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 그들은 강하고 주목받는 전통들을 필요로 한다. 그 전통은 그러나 생각과 심사숙고를 일깨우지는 못한다. 더군다나 그것을 오히려 제외시킨다. 이러한 성질들은 그러나 첫 눈에는 소망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개인은 단지 그 사회가 그기에 그 기회를 줄 때에만 그리고 그 사회가 그 개인에게 우선적으로 그기에 그 기회를 줄 때에만 찾게 된다. 여기서 그 영혼지식학 혼자서는 교육학을 위해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우주적인 부분에 융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자신보다는 또한, 그 어떤 다른 것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것은 첫째로 개인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신의 이익만이 아닌 것에 준비되어있다. 우리들은 생각한다는 조건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알고자하는 지식에 가깝게 타고 났다. 우리가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즐겨서 알고자한다. 그기에 연관있는 그리고 묘사하는 그 사회적인 현상과 연결하고 그 목표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단지, 사회지식학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 흐릿하고 흔들리는 공적인 의식이 무엇이어야 한다는 이러한 목표를 찾기 위해서 더 이상 알지 못한다면 사회지식학은 우리를 도울 수 있다. 인간적인 의식을 기르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섬세함을 기르는 것이다. 사람들의 필요성을 사회에서 찾아내는 사회지식학에서 사회를 관찰해야만 한다. 교육학자는 그 생각들을 찾아낸다. 다양한 아이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 양육의 목표들은 사회적인 목표들인 것이다. 그 도구도 사회적인 도구이어야만 한다.

국가에서 지켜야할 규정이 있는 것처럼 학교에도 규정이 있다. 학교생활은 사회생활의 씨앗인 것처럼, 그러한 삶의 완성이 되는 것처럼 실재로 가능하다. 매번 만일 양육적인 방법들이 깊숙히 변화되었다면 그 어떤 크나 큰 그 전체의 단체적인 삶에 느낄 수 있도록 된 사회적인 기류의 영향력을 받은 것이다.

내면적인 자유에 대해서 존중하고 그 어떤 압력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 따라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그 모든 우리의 현대적인 개인사상이 그 밑바닥에 깔려있다. 사회적인 필요성은 그 목표 그리고 그 도구의 필요성은 단체적인 생각들, 단체적인 느낌들을 표출하는 것이다. 개인도 의심할 여지없이 그기서 스스로 그 개인의 이익을 얻게 된다. 우리들에서 그 양육은 가장 좋은 것을 우리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고 말하는, 그 가장 좋은 것은 그러나 사회적인 원천이다. 사회를 연구해야만 한다. 여기서 단지 그 교육학자는 그의 숙고의 원칙들을 발견하게 된다. 심리학 즉, 영혼지식학은 그 원칙들을 전달할 수는 있어도 그 원칙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교육학을 위한 사회지식학적인 생각점은 우리나라에서 지금의 시점에서 시급하게 필요로하고 있는 그 교육학을 위한 사회지식학적인 관점은 그 어떤 시대에도 그 어떤 나라에서도  없었다. 그 깊숙한 변화에 고통을 받았고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서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국가의 양육기관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고 그것이 어떻게 변화되어져야할지 우리가 아직도 잘 모른다면, 그 교육학적인 문제는 17세기때와는 다르게 우리에게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회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 필요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 필요성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양육가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지식학적인 교양이다. 사회지식학은 방향을 결정하는 생각들, 우리 실재의 영혼으로서 도움을 준다. 우리가 실제로 행하는 것에 하나의 의미를 두고 그 실행에 연결되는, 그것이 바로,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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