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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시아 지도

  2018.1.21

아시아는 유럽보다도 훨신 더 큽니다! 유럽은 그럼 무엇인가 한번 알아봅시다. 먼저 결론부터 말을 하면 아시아인들의 유럽으로의 이동이 없었다면 오늘 날의 유럽은 존재하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유럽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유럽을 개인적인 사유로 취급하려는 사람들로인해서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교류가 모든 방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지 못합니다. 유럽과 아시아는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땅덩어리입니다.

유럽은 단지 아시아인들과 더 일찍 유럽으로 넘어간 아시아인들과의 혼혈들이 사는 곳입니다. 중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유럽 사람과 같은 얼굴 모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유럽은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서 기후가 아시아와는 다르게 낮은 평균적인 더위와 추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래된 세월과 함께 그 기후에 따른 하얀 피부색이 나타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500년 전에 유럽으로 온 사람들은 혼인에 의해서 오늘 날에도 관찰해볼 수 있는 것처럼 그 자녀들이 혼혈이 되는 것입니다. 유럽과 아시아는 하나의 땅덩어리를 하고 있습니다. 유럽으로 넘어간 흉노족은 중국 진시황제의 만리장성을 넘지 못해서 유럽으로 넘어갔다고 중국 역사학문가들은 이야기 합니다. 중국에서도 수 많은 인종들이 살고 있습니다. 서로 대화를 할 수 없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흉노족 외에도 중국에서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오늘의 이란, 터키만 지나면 육지로 말을 타고 그리스로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초이스라는 단어는 그리스 원래의 그리스어가 아닌 외래어라고 하니, 외부에서 이민 온 민족이 다신중에서 그리스 최고의 신, 초이스를 가진 셈입니다. 오늘 날에도 유럽은 미국보다 더 오래된, 세상 전체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 중에서 유럽 사람으로서 다시 아시아로 건너가서 아시아인 특히, 사무라이들의 나라 일본의 도움으로 그리고 중국 내부의 도교 사상가들의 도움에 의해서 20세기에도 유럽 국가들, 영국,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동국, 러시아, 미국이 중국 베이찡을 침략하고 이씨 조선까지 식민지 건설을 하고 하였습니다. 유럽은 아시아와 마찬가지로 결혼 정책으로 이미 유럽 전체가 친척들로 구성되어 표면적으로는 서로 싸우는 것 같지만 서로 이익만 나누어 가지면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유럽에는 또한, 그  불법, 폭력의 식민지 개척을 하지 않고 혁명을 위하여 조용히 문화를 가꾸어나가는 민족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희부루 언어를 사용하는 이 민족은 자신의 조국으로 헝가리, 영국,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동국, 체코 등 여러 유럽의 나라들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유대인이었습니다. 오늘 날의 이스라엘입니다. 왜 자신의 조국을 버리고 새롭게 또, 나라를 그렇게 어렵게 이룩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 생명을 또 자손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하여 그 힘든 길을 가여만 하였습니다.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와서 그 아시아를 지배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은 이미 그 자신의 나라들 유럽에서의 그 지배력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나라, 조국을 위해서 지배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지배를 위한 지배에 불과합니다. 온갖 폭력과 불법을 사용하여 오로지 그 자신들 왕 그리고 황제 교황에게 아부하는 사람들만이 잘 살게 하는 그러한 깡패로서의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절대적으로 비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미개인의 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유럽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유럽 민족들의 빛나는 업적을 가로채고 유럽인으로서 행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유럽 역사에서 너무나 잘 알아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예수를 부르짖는 이유는 오로지 지배를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사기행각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날 이 세상은 오직 예수 아래에서 유엔UN도 운영되고 있고 그래서 전쟁이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70년이 넘게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이유도 바로 그기에 있습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상황에 대해서 경제를 최 우선으로 하는 한사람에게 마다 다 물어보면 이율배반적이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음과 양을 상징하는 십자가는 한국의 남북 전체를 십자가로 지배하고자 합니다. 한 때는 유럽의 계몽이 된 황제도 종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예수회 수도원들을 문을 닫게 하고자 대단한 노력을 하였지만 지금까지 이씨 조선 그리고 북조선 만큼 해 낸 황제는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미 그 국가보안법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부정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적으로 다루어야만 한다고 하는 글들입니다. 유럽에서 오로지 독점적인 지배를 위하여 제 1차 세계대전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해야만 했고 유대인들도 그래서 유럽 전체에서 600만명이 죽음을 당하고 이스라엘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유럽에서 이렇게 억압을 당하고 있는 민족은 없습니다. 고대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안중근 열사가 죽임을 당한 것처럼, 그 황제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지만 유대인에게 물어보니 그 당시 유대인들이 그  예수를 죽이라고 해서 그 황제의 대리가 죽였다고 하며 바로 그 거짓된 내용을 그 모든 세상에 퍼뜨리고 또,  유대인들을 증오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북한 만큼의 증오의 대상입니다.

성당, 신부, 성령, 신성한 전쟁이라고 이름을 붙일 정도로 자신들이 하는 행동은 그 모든 것이 신성한 것이고 그 다른 사람에게는 도교의 유명한 교리로 자신들이 마음데로 독점을 하기 위해서 언제나 하지 말라만 외치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신약 마태오 4장 1절에서 11절을 잘 살펴보면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자 하지 않았으며 그의 종교는 유대인 즉, 해브루 사람 모세의 종교입니다. 토라는 유대인들의 경전입니다.  그 토라를 구약 성경이라고 부르면서 모세의 십계명도 신자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잘 읽어보면 성령이라는 존재가 유혹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토라에서 말하는 주인(창조주)과 신약의 성령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잘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하수인이 바로 악마를 나타내는 방해자인가라는 의구심도 일게 합니다.

그리고 악마는 방해자라는 개념이지만 지금 로마 카톨릭에서는 악마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간다고 미신적인 내용으로 잘못 가르치고 그래서 가족도 악마로서 죽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201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구마 사건 참조) 


신약 마태오 4장 1절에서 11절

1그 다음에 예수는 성령에 의해서 사막으로 이끌어졌다. 그기에서 그는 그 방해자로부터 유혹을 당하도록 하여야하였다. 2그가 40일의 밤과 낮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프게 되었다. 3 그 때에 그 유혹자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네가 만일 신의 아들이라면 여기에 있는 돌이 밥이 되도록 명령을 하여라 하고 말했다. 4 그러나 그는, 토라에는 사람은 단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신의 입에서 나오는 그 하나 하나의 말들을 통해서도 살아가는 것이다 하고 말했다. 5 그 말을 듣고 그 방해자는 그를 데리고 그 성스러운 도시로 데리고 가서는 그를 성전의 꼭대기에 서 있게 하였다. 6 그리고는 그에게 네가 신의 아들이라면 여기서 뛰어내려라 왜냐하면, 너의 발이 하나의 돌에도 부딪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 신은 그의 천사들에게 너를 손으로 떠 받추어 주기를 명령한다. 하고 말했다. 7 또한, 그 토라에는 너는 그 주인을, 너의 신을 시험해보려고 하지 마라, 라고 적혀있다고 말했다. 8 그 방해자는 다시 그를 아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그 모든 이 세상의 부유한 나라들을 보여주며 9네가 만일 나에게 몸을 굽신거리고 나에게 기도를 한다면, 나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 때, 예수는 방해자는 물러가라! 그 주인, 너의 신 앞에서만 굽신거리고 오로지 그를 향해서만 일을 해야한다고 그 토라에는 적혀있기 때문이다. 11 그래서 그는 그 방해자를 그로부터 멀리하도록 하였고 그 천사들이 와서 그를 위해서 일을 하였다.                          

 

 

2018. 1.22

지식은 무기입니다.
16세기 프랑스에서는 카톨릭과 신교 후게노텐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아래에서는 예수회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입니다. 오스트리아 동국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에서 발췌 번역하였습니다. 

독일어 번역 : 신 순임
책 제목 : 시간의 그림들 3 (Zeitbilder 3) 역사 그리고 사회  22쪽부터
책 지은이들 : 봐이센쉬타이너 (Weissensteiner) 그리고 레팅어 (Rettinger )
출판사 : öbv & hpt, Wien        www.lisa.or.at
In Verlagsgemeinschaft mit Ed, Hölzel, Wien
Verlag Jugend & Volk, Wien 1999

16세기에 루터와 칼빈의 가르침이 절정에 달하게 되었고 로마 카톨릭은 거의 소멸 상태에 놓이게 된다. 로마 카톨릭은 새롭게 단장을 하게 된다. 신교의 가르침에 대해서 날카롭게 선을 긋는다. 구교의 믿음에 대한 원칙을 고수하고 경전 그리고 구두로 전해진 내용을 통해서 믿음의 기초를 형성한다. 7개의 성사를 유지한다. 신의 은총과 함께 구원을 위해서 사람의 행동 또한, 중요하다.
1545년 교회는 트리엔트에서 하나의 교회 회의를 소집하여 약간의 휴간과 함께 18년 동안 주관한다. 새롭게 단장하는 교회의 정책들로 성직자들은 단지 하나의 공무직인 관직만 가지도록 하였다. 성직자들의 결혼은 여전히 금지시켰다. 면죄부 판매를 중단하였다. 성직자들에게 수도원의 규율은 더욱 더 엄격하게 지키도록 하였다. 새로운 수도원의 설립으로 우슬리너의 수도원은 학생들을 돌보는 학교를, 도움의 형제 수도원은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 예수회 수도원
1534년 예수회 ( S. J )수도원이 한국이름, 성 이냐시오 로욜라 ( 이거나찌우스 폰 로욜라, Ignatius von Lojola )에 의해서 거의 군대식으로 창립되는데 그 당시에 설립된 수도원 중에서 그 어떤 수도원보다도 월등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 예수회 수도원의 최고의 위치에는 장군이 있어서 그 교황을 책임지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 그 각 지방마다 그 각각의 수도원장이 있어서 그 아래에 또, 수도사들을 거느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수도사들은 주의스럽게 선별하였고 조심스럽게 교육을 시켰으며 엄격한 시험을 통과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상위 수도사들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해야할 의무를 가지도록 하였다.

한 역사가의 성 이냐시오 로욜라 (Ignatius von Loyola 이거나찌우스 귀족 로욜라) 에 대한 기록
그의 158 Cm의 키로서는 웅장한 모습은 아니었으며 귀족적인 섬세한 얼굴의 생김세도 아니었으며 한 날카로운 코, 날카로운 턱, 엄격하고 깊숙히 놓여있는 사람을 찌를 것 같은 검은 눈동자 그리고 결단력이 있는 얼굴의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나의 생각에만 몰입된 경직된 정신나간 유머 감각이 없는 성인이었다. 그는 종교 법정을 허락하였고 자신은 그 비난하는 사람들을 체포하는 일에는 전혀 개인적으로 합세하지 않았다. 종교 법정에 대해서 그는 도구로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희생자였다. 장작불 그리고 칼을 이용하여 로마 카톨릭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울 능력이 있는 젊은 시절의 사람들을 모아서 바위와 같은 믿음을 가지도록 단련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문헌: 첸스 2 요약 (Zens) 2

예수회의 복종에 대헤서
복종에는 3가지의 단이 있다. 제 1단은 한 사람에게 그 무엇인가를 명령을 하도록 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복종을 한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제 2단은 아주 간단한 명령에 복종을 한다면 이 복종은 더 좋은 것이다. 제 3단은 위로부터의 명령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내가 하는 행동은, 그가 분명하게 소리내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것을 먼저 알아차리고 행하는 것이다. 이 복종은 그 다른 둘 보다도 훨신 더 완전한 복종이다.
문헌: 역사의 기본적인 흐름, 문헌집 ( Grundlage der Geschichte, Quellenband )

그 예수회 수도원의 중요한 과제들
그 예수회 수도원의 최고의 목표는 사람들이 다시 카톨릭적인 믿음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 그리고 선교를 하는 것이었다. 그 예수회 수도사들은 수도원 담장안에서 살지 않았다. 그들은 그 민족 깊숙히 파고 들었다. 거창한 연설을 하여 보였으며 학교들을 설립하였고 행사로서는 왕들의 궁전의 연극장에서 연극을 화려하게 관람하도록 하였다. 왕들로부터 고백성사를 받아내었고 왕자들에게는 크나 큰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 카톨릭 교회는 많은 사람들을 로마 카톨릭의 믿음으로 다시 돌려놓았다.
그 카톨릭 믿음으로 남아있었던 지방의 왕자들과 함께 그 예수회는 그 지역 사람들을 다시 카톨릭의 믿음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또, 다른 수도원을 설립하기에 노력하였다. 그 먼 지역인 독일, 오스트리아 동국, 그리고 뵈멘 (오늘 날의 체키아) 에서도 또한, 성공적이었다.

그 사람들을 기독교에서 로마 카톨릭으로 되돌려놓는 방법
여기에도 그 폭력을 그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그 기독교를 신봉하는 반대자들에 대항하여 투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성직자들이 주관하는 법정을 새롭게 설치해서 그 고문을 통해서 그 자백을 강요하였다. 그 자주 아주 간단하게 법정에 세우기 위해 악마와 연락을 취하는 마귀로 여겨지게 되면 그 죄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특히, 부인들을 마귀로 몰아세우는 일은 아주 잔인한 일이었다.

독서 금지하는 책
교황들은 책의 목록을 만들게 해서 신자들이 그 허락하는 책만 읽도록 하였으며 그 검은 목록의 도서는 구입 금지, 독서 금지, 번역 금지, 배포 금지령을 내렸다.
1967년 2번째 바티칸 회의 소집때 그 검은 목록 작성을 중단하도록 명하였다.
그들은 그 당시에 진정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들의 종교에 대한 설득을 강요하고자 하였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독일, 동국 오스트리아에서의
로마 카톨릭과 기독교 사이의 30년 전쟁

황제 가문 합스부억 (Habsburg) 의 지방에서의 황제적 지배자들은 사람들이 카톨릭으로 머무르도록 요구하였으며 그 요구를 듣지 않았을 경우는 그들의 고향을 떠나야만 하였다. 16세기 중반 카톨릭은 거의 소멸될 지경에 이르렀으며 그 갈등은 점점 더 날카롭게 발달하였다. 그 종교들 사이의 30년 전쟁의 그 발단은 뵈멘에서 기독교의 귀족이 프락의 성을 차지하고 3명의 황제 합스부억의 공무원을 창문을 통해서 내던진 사건이었다. (프락의 창문 내던지기 사건 ) 독일, 동국 오스트리아 많은 지역에서 인구 3분의 2 이상이 생명을 잃었으며 불 지르기, 살인, 도적질로 인해서 상업과 경제는 완전히 잿더미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독일은 몇 십년이 지나도 그 회복이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