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리 요아힘 가욱 (Joachim Gauck) 2013년 75. 추모 음악회 독일 나찌들 유대인 시민들에게 도발한 날 11월 9일
2018. 2. 3.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다에서, 2013년 11월 9일
독일 총리 요아힘 가욱
오늘 저녁에 우리는 추모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75년 전에 그 많은 유대인 시민들에게 아주 엄청난 정의롭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추모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유대인들을 몰아세우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스광스럽게 만들어서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고 살인적으로 구타하고 그들의 성전을 사람은 더럽게 만들고 그 성물들을 도적질하고 마침내 그 성전을 사람은 불로 태웠습니다. 우리는 따돌림 그리고 추격의 이 이야기가 어떻게 계속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 어떻게 그들에게 집성촌에서 그리고 수용소에서의 집단 살인까지 이끌어졌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 희생자들을 추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 행위자도 생각해봅니다. 내가 바로 지금 말을 할 때, 사람은 그들의 성전에 불을 질렀다. 이러한 비개인적인 <<사람이>> 라는 단어에는 아주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가 숨겨져 있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아주 큰 의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또한, 이러한 <<아주 평범한 사람들>> 그들, 사람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다는, 아니 구별해야만 한다는, 살아야할 가치가 있는 사람과 살아야할 가치가 없는 사람 사이에, 사람과 하인, 주인 인종과 노예 인종 사이에, 독일 아리아 인종과 독일 유대인 인종 사이를 구별하는 그 흉악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된, 그 아주 평범한 독일인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가장 험악한 기억 중에서는 아마도 그 많은 행위자들이 전혀 양심의 가책이라는 의식이 없이 그러한 행위를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은 그 도덕적인 분류에 따르는 것과 같이, 그 선과 악을 이해하는 것처럼 그렇게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넓게 보면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날에는 동시에 고통스러운 또한, 위로스러운 기억도 함께 포함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인종 차별을 위해 미쳐 날뜀에 대해서 반대하고 추격의 기계 그리고 몰살의 기계에 대해서 대항하였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 유대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아주 잘 알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그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이러한 기억은 고통스럽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또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그 자유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수는 바로 이러한 자유를 사용하지 않았고 눈을 감았거나 함께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모가 위로해주는 점은 그 착한 선의 전체를 그리고 그 착한 선에 대하여 악은 승리할 수 조차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성경에서 이르는 바와 같이 한줌의 <<정의로운 사람>>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어서 그 인류의 사랑에 대해서 큰 소리로 말을 하고 그것을 금지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그것을 두려움때문에 잊지도 않으며 그 사람들 각각의 개인에게서 형제, 자매적인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어제 독일 베를린(Berlin) 중심지에 있는 예전에 오토 봐이트(Otto Weidt)의 눈봉사들을 위한 수공예작업장으로 사용하였던 그 장소에서 그 오토 봐이트는 유대인 추격의 시대 동안에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던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잘 알고 있기를 기대하는, 주목해야할 가치가 있는 부인, 잉에 도이취크론 (Inge Deutschkron)은 그 곳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나를 위해서 그 장소의 공간들을 안내하였고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용기 그리고 신념을 알게 되었고 그러나 또한, 만일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구하고 또는, 최소한 잠시라도 안녕을 주도록 하고자 한다면 그기에 포함되는 그 유머 그리고 지혜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또한, 그렇게 어두운 시대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류의 사랑에 대한 신념에 대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그렇게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 음악의 집에서 이스라엘의 추모의 집, 야드 바쉠 (Yad Vashem) 에서 제공하는 하나의 전시를 한다면, 얼마나 다양하게 그리고 그 어떤 개인적인 방법과 형식으로 사람들을 << 민족들 가운데 정의로운 사람들>> 로 선정이 되었는지를 우리들 눈앞에서 선명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야드 바쉠으로부터 이 전시의 중심점에서 설명되어지는 것은 알바니아로 망명을 하였던 유대인들을 그들의 무슬렘을 믿는 이웃집 사람들에 의해서 어떻게 숨겨주게 되었고 보호되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된다면 틀림없이 그것은 하나의 특별한 실제적 사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추모는 하나의 특별한 의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의 텅빈 느낌 또는, 하나의 허무맹랑한 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두가지는 함께 포함되고 있습니다. 즉, 우리들이 오늘 저녁에 여기에서 또는, 오늘 오후에 내가 에버스봘대 (Eberswalde)에서 불에 타서 허물어진 유대인 성전, 지나고개 (Synagoge) (영어: 시나고그) 에서 역사적으로 일어난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서 희생가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세운 인상이 깊은 푯말옆에서 있었습니다. 75년전 행하여진 엄청난 범죄에 대해서 추모하는 것 그리고 그 다음에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행하여진 행위들에 대해서는 오늘 날의 외국인 증오현상 그리고 인종 차별주의에 대항하여 우리가 생동감있게 일어서야합니다. 이러한 방향 설정이 그 어떤 엄청난 행위로 이끌고 나가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독일 네오 나찌, 즉, 민족사회주의 지하조직(Nationalsozialistischer Untergrund, NSU)의 살인들을 통해서 경험해야만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네오나찌(Neonazi)들이 그들의 미개인적인 존재를 우리들의 도시에서 그리고 마을에서 행사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사람들, 아마데 안토니오(Amadeu Antonio)처럼 구타 살인되어지는 것을 막아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그 새롭게 그 두뇌를 흐리게 만드는 그리고 그 마음을 썩어지게 만드는 증오심 그리고 광신적인 인종 차별주의를 막아내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모두 우리들 스스로,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나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곳에서 눈을 감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해야만 합니다.
나는 어제 그리고 오늘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나는 그 모든 활동적인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생동감있는추모 활동을 하고 있는 그리고 그 인종 차별주의 그리고 사람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에 대항하여 여기에서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의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함께 활약하고 있다고 마음 놓고 그렇게 간소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